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용의 눈물 (문단 편집) == 줄거리 == 원작은 [[박종화]]의 소설 《[[세종대왕]]》이지만, 극중 세종[* 이후 [[대왕세종]]으로 남은 부분을 다루었으나, 본작에 비하면 극의 스케일도 줄어들었고, 고증 면에서도 크게 뒤떨어진다.]의 비중은 거의 없고, [[위화도 회군]]으로부터 시작된 [[조선]] 개국부터 [[태종(조선)|태종 이방원]]의 사망까지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이성계]]와 [[태종(조선)|이방원]]이 주인공인 작품이다.[* 사실 원작 《세종대왕》 도 [[여말선초]] 전체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거의 중반부까지는 태종이 [[진 주인공]]이다. 태종 사후에는 온전히 세종 시대를 다루지만, <용의 눈물>은 이방원의 죽음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에 원작의 중반 정도까지만 다룬 셈이다.] 처음에는 100부작으로 [[위화도 회군]]부터 [[조사의의 난]]까지 다룰 계획이어서 이성계와 이방원의 비중이 비슷하게 설정되어 기획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초반에는 시청률이 저조하다가 이방원의 비중이 올라가면서 시청률도 급상승하자 무려 59회나 연장하여 태종의 생애를 전부 다루게 되면서 결국에는 [[게티즈버그 연설|태종의, 태종에 의한, 태종을 위한]] 드라마가 되었다. 이에 대해 메인 시나리오가 [[용비어천가]]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다. 제목도 '용'의 눈물이고. 좀 더 정확하게 파고들면 <용의 눈물>은 조사의의 난까지 다루려 했던 초기 기획을 감안하면 [[신덕왕후]], [[정도전]], [[이방석]] 등을 떠나 보낸 이성계의 심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제목이다. 이방원의 진주인공화와 연장 이후로 따져도 이성계와 화해할 때나 승하했을 때, 양녕의 폐세자 때의 울음이나 마지막에 지난 날을 참회하며 비를 기원한 '태종우' 등 이방원의 일생과 심경도 상징한다. 1화부터 159화까지 다루는 시대는 고려 우왕 말기이자, 이성계, 조민수의 주도로 이루어진 1388년(우왕 14년) [[위화도 회군]]부터 태종 이방원이 숨을 거두는 1422년(세종 4년)까지 만 34년의 기간이다. 역사의 시간에서 34년은 짧디 짧은 시간이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에 [[무인정사]], [[조사의의 난]], 민씨 4형제의 죽음. 세자 양위파동. 사병혁파. [[호패|호패법]] 제정 등 굵직한 사건이 모두 일어났으며, 이를 세세하게 다뤘다. 극중 나레이션의 인물소개 하나하나가 조선 건국의 파란만장한 면모를 보여줄 만큼 나직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음성으로 다뤄 극의 몰입에 크게 이바지를 했다. 원래 <용의 눈물>은 100부작으로 기획되었고, 사건도 [[위화도 회군]]에서 [[조사의의 난]]까지만 다루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시청률이 저조하여 SBS의 사극 《[[임꺽정(드라마)|임꺽정]]》에 밀리고 있었으나,[* 용의 눈물에서 [[정도전]] 역을 맡은 [[김흥기]]는 임꺽정에서 악역 남치근 역을 맡고 있었다.] 《임꺽정》의 종영 이후, 시청률이 올라가고 대박을 치면서 KBS가 이례적으로 59부작의 분량을 연장하면서, [[양녕대군]]의 비행과 태종의 죽음까지 다루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태종이 [[조사의의 난]]을 진압하고 [[한양]]으로 환도하는 장면 이후 태종의 왕자들이 장성하는 기간을 건너뛰며, 태종의 양위 파동이나 민무구, 민무질 형제를 숙청하는 장면은 내레이션으로 '사실 여러 번 있었던 일이나 한 번만 다룬다/짧게 다룬다' 정도로 소개한다. 후속작인 《[[왕과 비]]》도 원래는 주인공인 [[인수대비]]가 대비로 책봉되어 궁에 들어가는 것까지만 다루기로 하였으나, 그 다음 작품인 《[[태조 왕건]]》의 제작이 더디어지자 폐비 윤씨와 [[연산군]] 파트도 다루었고, 그동안 시청률이 높지 않았던 [[왕과 비]]는 그제서야 시청률이 대폭 상승했다.] 오히려 시청자들이 [[PC통신]] 등으로 <용의 눈물>의 연장을 바랐다고 하니, 요즘 드라마가 조금만 시청률이 높아져도 윗선이나 제작진에서 임의로 연장하는 것과는 다른 이례적인 사례였다. 한 때 연장해서 세종 재위기 전체를 다룬다는 보도도 있었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3479056|#]] 실제로 이렇게 했다면 월탄 박종화의 <세종대왕>을 원작으로 한 것에 부합한 방향이 되었겠지만,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실현되지 않았고, 결국 이방원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아마도 링크된 기사에 나온 정치적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나, 세종 재위기가 사극으로 재미있게 다루기는 힘들다는 점이 고려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 시대는 훗날 [[대왕 세종]]으로 다뤄졌으나, 이 작품에 비하면 비교하는 게 실례일 정도이다.[* 후속작 《[[왕과 비]]》는 단종/세조실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역사왜곡 논란이 일어났을 뿐 전반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재현하였으나, 《[[대왕 세종]]》은 아예 허구의 사실을 만들어 그를 중심으로 드라마를 전개하여 정통사극이라고 할 수 없다.] 2014년에 방영된 [[정도전(드라마)|정도전]]이 비슷한 시대를 다루고 있는데다 밑에 보다시피 겹치는 배우들이 여럿 되는지라 종종 같이 언급되기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